2026/3/12/요 11: 38~44 / 돌을 옮겨 놓는 것은 내 몫이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돌을 옮겨 놓으라”(39절)
마르다는 부활과 생명의 주님에 대한 고백은 했으나 분명한 죽음의 경험 앞에서 냄새가 난다며 주님을 만류한다. 이미 죽음을 경험한 마르다에게 주님은 다시 한번 믿음을 요청하신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절)
마르다는 사람들을 시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돌을 옮겼다. 이제 무덤 문이 열렸다. 주님이 그 무덤 안을 향해,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된 자를 향해 말씀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43절).....
그러자 죽은 자가 수조을 베로 동인 채로 주님 앞으로, 무덤 밖으로 걸어나온다.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살리셨다.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부르시기위해 우선은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겨야 했다. 돌을 옮기는 것은 마르다와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마르다의 부탁으로 사람들은 그 돌을 옮기지만,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알지 못한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지만, 도대체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신 말씀이 무엇을(=나사로의 살아남)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한 믿음도 없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니 따른다, 돌을 옮긴다. 마르다가 돌을 옮긴 것은 대단한 믿음과 순종은 아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부탁하시니 할 수 없이 그 부탁을 따르는 것이다....그런데 쓸데 없는 일 같은 돌을 옮기자 정말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걸어나온다, 죽은 자가 살아나온다. 주님은 죽은 자도 부르신다, 죽음에게도 명령하셔서 순종케 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이 말씀이 빈 말이 아니셨다.
그러나 죽음을 경험하고도 생명의 기쁨과 환희를 누리기 위해서는 비록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더라도 돌을 옮기는 수고를 해야 한다. 돌을 옮기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주님이 살리신다, 주님이 다시 생명과 기쁨을 주신다, 그러나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