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바벨론의 왕이 편지와 예물을 사자들에 손에 그에게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에서온 사자들을 맞이하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이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왕하 20: 17,18>
예루살렘과 다윗의 집안이 모두 다 바벨론왕에게 사로잡혀갈 것이고 멸망할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히스기야가 그의 온갖 보물들과 군사력을 보인 것이 무슨 잘못이었기에 하나님은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끌려갈 것을 말씀하실까요?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보인 것은 그와 그의 나라의 경제력의 과 군사력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내가 이렇게 많은 재물들과 권세들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자랑한 것입니다. 순간 자만하고 교만한 것이었습니다. 히스가야가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친 것이 그의 군사력이 막강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히스기야와 유다의 군대는 형편없었습니다. 앗수루왕의 신하 랍사게가 그의 군사들을 조롱하였지만 할 말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럼 앗수르 군대의 손에서 어떻게 구원을 얻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유다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어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곧 죽게 되었을 때 그를 낫게 하고 살게 하신 이는 누구입니까? 그가 가지고 있던 경제력 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통곡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낫게 하시고 그의 연한을 15년이나 더해 주신 것입니다. 앗수르 군대를 물리친 것도 히스기야의 죽을 상처를 낫게 하시고 생명을 더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기를 예방한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마치 자신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힘의 모든 원천인 듯 보여주며 자랑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리는 무척 교만하고 자만한 일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살리셨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통곡과 겸손을 잃고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려는 그에게는 그가 자랑하는 모든 것들이 곧 바벨론의 손에 의해 다 빼앗기게 되리라는 차가운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만약 이때 히스기야가 자신의 강함과 부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주시고, 자신을 죽을 상처에서 낫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바벨론왕은 히스기야가 어떻게 앗수르 대군을 물리쳤는지, 어떻게 죽을 병에서 살아났는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에게 일어난 그 일들을 그대로 사신들에게 말하여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언제나 믿고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하신 일임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바벨론이라는 먼 이방 나라에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이름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이방 선교의 새로운 장이 열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능력의 하나님이라면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히스기야가 자랑가고 보여주어야만 했던 것은 자신의 부함과 강함과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앗수르 대군을 물리쳐 주신 하나님, 죽을 상처에서 자신을 건져주시고 생명을 더해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랑하고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만 했습니다. 오늘 성도가 세상에 자랑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구주가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교만과 경솔은 우리를 심판의 자리로 이끕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고 세상의 평화와 이방의 선교 열매로 드러날 것입니다. 아멘.